| 로그인 | 회원가입
2017년12월12일tue
 
한줄뉴스
OFF
뉴스홈 > 연예 > 연예가화제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다 이해하지 못해 슬픈 이야기…
등록날짜 [ 2017년12월06일 13시38분 ]


 두 여자의 아름다운 우정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간단히 정리해버리면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감독 청궈샹)는 통속적인 멜로드라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두 친구와 이들의 엇갈린 사랑,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굴러가는 운명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는 수도 없이 봐왔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이 작품을 간편하게 취급하기에는 어딘가 개운치 않은 마음이 남는다. 이 작품의 상투성 끝에는 결코 진부하지 않은 슬픔이 자리하고 있다는 어떤 짐작 때문이다.

열세살에 만나 스물일곱살까지 함께한 칠월(저우동위)과 안생(마쓰춘)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의 제목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이고 현지 제목은 이보다 더 간단한 ‘소울메이트’다. 관객으로 하여금 ‘우정’ 혹은 ‘사랑’ 같은 단어를 강제하는 단어다. 원작 소설의 제목은 다르다. 

‘칠월과 안생’, 이 말에는 감성은 없고 두 사람만 있다. 다만, 성의 없어 보일 정도로 건조한 이 제목에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속 슬픔의 정체가 있다.

현재의 안생이 칠월이 인터넷에 올린 ‘칠월과 안생’이라는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의 13살 첫 만남이 시작된다. 

플래시백은 새로울 게 없는 형식. 많은 영화가 사용하고 단순히 궁금증을 유발하기 위해 목적 없이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플래시백에는 다른 면모가 엿보인다. 이 방식이 영화의 실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 중 하나라는 점이다. 

플래시백의 근거가 되는 칠월의 글이 소설이라는 건 의미심장하다. 소설은 결국 허구일테니 글에 담긴 안생의 삶은 칠월이 추측해 지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지고보면 칠월과 안생은 함께한 시간보다 함께하지 않은 시간이 더 길었다. 두 사람은 네 번 이별했고 함께해서 좋았던 시간만큼 함께한 탓에 눈물 흘린 기억도 많았다. 성격마저 반대였던 이들의 인생은 고등학교 진학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엇갈린다. 영화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끔 분리한다.

칠월과 안생이 첫 번째 이별을 맞을 때, 이같은 대사가 들어간 건 그래서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날 칠월은 한참을 울었다. 가명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헤어짐이 슬픈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실망한 것이었다. 안생을 자신만큼 사랑할 수 없어 실망했고 안생의 모든 것을 나눌 수 없음에 낙담했다. 예전에는 미처몰랐다. 어른이 된다는 건 원래 이런 것이란 걸” 칠월은 결코 안생과 영혼까지 나눌 수 없었다는 것. 안생도 마찬가지다. 

그는 친구 칠월의 삶을 독자로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안생(安生)이 그의 이름처럼 한 곳에 정착하고 싶어한다는 걸 칠월은 알지 못했다. 안정지향적인 칠월(七月)이 그의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1년 중 가장 밝고 뜨거운 7월과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는 걸 안생 또한, 몰랐다. 

두 사람 삶에 모두 개입한 남자 가명이 끝내 고개를 떨구고 눈물 흘리는 것 또한, 그가 사랑했던 두 여인에게 온전히 가닿지 못해서다. 칠월과 안생의 우정에 웃음보다 눈물이 더 많은 건 신파가 아니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관계의 한계에 좌절해서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가 보여주는 지나치게 드라마틱한 전개는 통속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겠지만 다르게 생각해볼 여지도 있다. 칠월과 안생의 불완전한 관계와 이해를 110분 안에 담기 위해서는 더 극적인 장치가 필요했을 거라는 게 첫 번째 변론이다. 

통속성은 어쩌면 필부필부의 삶을 더 명확히 보여주는 방법일 수 있다는 게 두 번째 변론이다. 세 번째 변론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과정은 관습적이지만 뻔하지 않은 결론을 내놨다면 그것대로 인정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후반부 반전보다 중요한 건 영화가 칠월과 안생의 관계를 끝내 낭만적으로 정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칠월은 안생의 삶을 살고 안생은 칠월의 삶을 산다. 이 양상이 두 친구가 서로의 진정한 소울메이트가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그저 두 사람은 각자 진정 원했던 다른 길을 가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오랜 친구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확장됐을 뿐이다. 

그들은 영혼까지 공유하는 소울메이트가 아니라 단지 ‘칠월과 안생’, 달라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두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해피엔딩일 수 없다. 


 
올려 0 내려 0
편집국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등 올해 최고의 영화 선정 (2017-12-06 13:39:25)
장항준 “인간 본연 이야기 하고 싶다” (2017-12-05 13:40:51)
安 바른정당 통합 행보에 호남 ...
한국당 원내대표 경선 최대 변...
우원식 “한국당, 민심 직시해...
박옥분 의원, 민주시민교육 거...
박승원 대표의원, 15일 출판기...
경기도의회 건교위, 나눔과 사...
안산시 예담치과·소담의원, 라...
현재접속자
대기뉴스이거나 송고가 되지 않도록 설정됨